제일교회 : 환영합니다

 
작성일 : 19-11-29 12:00
류시화님! 미안해요.
 글쓴이 : 정원영 …
조회 : 1,292  

‘류시화’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출판:더숲)에서 일부를 발췌하며 깊은 상념에 젖어 봅니다.
대학 졸업반 때의 일이다. 싼 월세방이 있다는 친구의 말만 믿고 경기도 외곽에 있는 어느 종교 단체의 공동 거주지에 세를 들었다. 나무들 사이의 오솔길이 강으로 이어져 있어서 문학을 하는 나에게는 신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학교도 가지 않고 밤에는 시를 쓰고 낮에는 주변을 산책했다.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장발을 한 낯선 자가 여름인데도 검은색 바바리코트를 입고(방이 추웠다) 자신들의 신성한 터전을 광인처럼 중얼거리며(시를 외운 것이었다) 어슬렁거리자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른 아침 여러 명이 예고도 없이 내 방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부정 탄다는 듯 신발도 벗지 않고 들어와서 나더러 당장 그곳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나는 집주인에게 세를 냈기 때문에 몇 달은 살 권리가 있다고 예의 바르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어 가능하면 오래 살고 싶다고도 간청하며 나 자신이 시인이라고 밝혔다. 그것이 문제를 더 키웠다. 흥분한 그들은 ‘시인’을 ‘신’으로 잘 못 알아듣고 급기야는 나에게 “마귀야, 마귀! 썩 물러가라!” 하고 고함치기 시작했다. 한 여성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하느님이 무섭지도 않느냐고 윽박질렀다. 난해한 자작시 몇 편밖에 가진 것 없는 문학청년에게 ‘마귀’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결국 몇 푼 안 되지만 나에게는 거금인 남은 월세도 돌려받지 못한 채 떠나야만 했다. 애초부터 잘못은 신앙 공동체 안에 겁 없이 뛰어든 이방인에게 있었지만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신은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시골길을 걷다가 연극부 후배와 마주쳤다. 그의 집이 그 동네에 있었다. 군인 담요와 책 뭉치를 들고 배회하는 나를 보자 그는 약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들은 후배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더니, 내가 지쳐 보였는지 설탕 탄 물 한 그릇을 먹이고는 세들 곳을 물으러 다녔다. 그리하여 강변의 밭 한가운데 서 있는 무허가 창고를 싸게 세들 수가 있었다. 동네와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또다시 배척당할 일도 없고 근처에 설탕물 타 주는 후배까지 있으니 든든했다. 전기가 없어 밥에 촛불을 켜고 지내야 하는 것 외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이내 여름 장마가 닥쳤다. 먹구름이 창고 슬레이트 지붕 위에 드리워지고 천둥이 헛으름장을 놓더니 저녁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들리는 빗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밖으로 나간 나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폭우에 급격히 불어난 강물이 금방이라도 밭과 창고를 삼킬 것처럼 저만치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한 시기였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있었지만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더 힘들게 느껴져,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앞이 내다보이지 않았다. 그 불안감을 가중시키며 저 앞에서 강물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때,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두려움 속에서 나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낡은 창고 앞에 서서 위협하듯 불어 오르는 강물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시인이 아닌가!” 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모든 상황이 시를 쓰고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경험해야 하는 일들로 여겨지고 삶의 의지가 다시 솟았다. 그렇다. 빗소리를 들으며 촛불 아래 글을 쓰는 것은 시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었다. 깊은 밤 홀로 강의 섬뜩한 물빛과 마주하는 것도. 폐렴을 개의치 않고 비를 맞는 것도 시인이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라고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말했다. 폭우가 쏟아져 사람들이 우산을 펴거나 신문으로 머리를 가리고 서둘러 뛰어갈 때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는 바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거나 시간에 맞춰 어딘가에 도착하기보다 무늬를 그리며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응시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붙잡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불어나는 강물 앞에 혼자 서 있었고 세상은 넘실거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달아나지 않기로 했다. 장대비에 연거푸 이마를 두들겨 맞으며 작가로서의 내 삶을 거룩한 소명으로 여겨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평범했던 문학청년이 우리 모두가 반기는 시인 ‘류시화’님이 된 지금, 역시 그분은 시인이었구나, 그래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래,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진 나도 이런 과정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십 수 년 전이었을 시인의 마음에 비수와 같이 꽃인 그 일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미안함을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대신해서 사과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시인께서 시인의 길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의 길을 찾다가 왠지 모를 낯섦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그 두려움은 오늘날 보다는 여러 가지로 미숙함이 많았을 우리 모두의 시대를 품고 있었을 바, 길을 찾아 나섰던 동행자의 마음으로 널리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들도 지금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시인께서 집을 삼킬 듯 달려 내려오는 계곡의 그 기세 앞에서 오히려 평온과 시인의 소명을 찾아낸 것이, 오늘 저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적 물음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으니 생각지 않았던 이런 귀함이 있음을 보시고 넓은 아량으로 한번 가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듯 달려오는 강물 앞에서 ‘나는 시인이 아닌가!’ 하며 모든 상황을 문학을 위한 경험, 그래서 그 어떤 상황과 대상 앞에서도 평온함을 글로 녹아내며 그 어떤 비도 맞을 수 있는 바보가 되어 사람들의 삶을 읽어 주어야 하는 시인의 소명을 찾아낸 당신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인의 내 모습을 감히 견주어 봅니다. 세상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기에 그 삶을 분투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기 생명을 십자가 죽음으로라도 대신하여 구원의 길을 열고자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바로 나라면 그 어떤 상황과 대상 앞에서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 삶의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 그런 바보가 되지 못했던 제 자신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큰 바보가 되어 그 길을 가겠습니다. 시인이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글을 통해 저와 같은 생각을 품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함께 신앙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의 소명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봅시다. 우리는 우리로 인하여 누군가 새 희망을 품고 새 삶을 노래할 수 있도록 빛과 소금이 되고 사랑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입니다. 시인이 우리의 삶에 위로와 용기로 채워 주었듯 우리 또한 그리합시다. 그래서 세상에 소망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것이 주께서 기뻐하실 우리의 일입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