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교회 : 환영합니다

 
작성일 : 19-11-29 12:02
우리는 아픈 이들을 안아주기도 바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글쓴이 : 정원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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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님의 수필집 『연필로 쓰기』에서 일부를 옮겨봅니다.

바다가 사나워서 여객선이 들어오지 않는 날 팽목항은 썰렁했다. 바다에 날이 저물고 방파제 끝 무인등대 쪽에서 사람들이 말없이 서성거렸다. 다가가서 물어보니, 서울 사는 70대 고교동창생들이 진도에 봄나들이 왔다가 마음이 힘들어서 팽목항에 들렀고, 청주의 작은 교회 신도들이 이 스산한 항구를 일삼아 찾아왔다.  숨진 단원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갈 때 받은 용돈은 5만~10만원 정도였다. 막내로 태어난 한 학생은 15만원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10만원을 주었고 취직한 형이 3만원, 누가가 2만원을 주었다. 갓 취업해 받은 월급으로 수학여행 가는 막내에게 용돈 2만~3만 원을 주는 큰 자식들의 성취감과 자부심, 그 돈을 받는 막내의 기쁨(용돈은 아버지한테서 받을 때보다 형한테 받을 때 더 신난다. 이때 형과 동생은 혈맹이 된다.) 그 돈을 주고받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뿌듯함-이 작은 행복을 위해 부모는 평생의 노동을 바쳐서 자식을 기르고 가르쳤던 것인데, 이 소중한 행복은 지금 바다 밑에 잠겨서 돌이킬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사소한 것들이 부모들의 슬픔에 불을 지른다. 죽은 아이의 목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 빛의 폭포처럼 흘러내리던 딸아이의 검은 머리채, 처음으로 립스틱 바르고 깔깔 웃던 입술, 아들이 동네에서 축구하고 돌아온 저녁의 땀 냄새, 학교 가는 아이를 먹이려고 아침밥상을 준비할 때 찌개가 끓으면서 달달거리는 소리……, 이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인가? 이 사소한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비로소 안다.
지난 3년 동안, 유가족들의 연대운동은 수많은 박해와 모멸을 뒤집어썼는데, 박해의 가장 핵심적 담론은 ‘안보와 경제’였다. 슬픔은 본래 퇴행적 정서이고 분노는 파괴적 충돌이며 거기에 오래 집착하는 것은 국민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소비를 위축시켜서 국가경제를 침체시키고, 사회를 혼란케 하는 행위는 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 그 담론의 주요 골자였다.

1950년 후반기에 전선은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왔고 피난정부는 부산을 버리고 제주로 달아날 궁리까지 하고 있었다. 그때 반공, 안보, 애국, 총동원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절박한 지향점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정치권력은 이 슬로건을 내세워서 국회를 짓밟고 부패로 축재했고 정적은 죽이고 양민을 학살해서 파묻었다. 그 후 60년의 세월 속에서 이 ‘안보와 경제’는 국가의 가장 신성한 가치로 군림하면서 그 휘하에 고급하고 세련된 담론과 법령, 제도, 사법권, 공권력과 감옥을 거느리며,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윽박질러서 입을 틀어막았고, 그래도 입을 닫지 않는 사람들을 내쫓고, 끌고 가서 가두고 때리고 죽이는 국가폭력으로 작동했다. 태극기는 이 국가 이데올로기의 최정상에서 펄럭였고, 그 가장 타락한 형태는 30억짜리 말(블라디미르)에 올라탄 정유라의 안전모에 붙어 있었다.
사회 공공성의 문제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은 재수 없는 소수(the unlucky few)로 몰아서 고립시키는 공작은 ‘안보와 경제’가 문제를 회피하는 오래된 방식인데, 세월호 참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도 어쩌다가 재수 좋아서 안 죽고 남아 있는 꼴이 되었고, 삶은 견딜 수 없는 무의미한 우연의 장난으로 느껴졌다. 쓰러진 세월호는 한국 현대사의 괴로운 자화상이다. 그 녹슨 고철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혜안이 생각지 못했던 그림자를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련한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가족들의 여리기만 한 마음을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내어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이 나라의 기득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한 유지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회,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국가 권력이 기득권이 되었을 때 어떤 상황들이 펼쳐지는지 그래서 어떻게 재정비해야 하는지를 생각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소시민의 삶, 그리고 여며지지 않는 상실의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들, 세월호 가족들 뿐 아니라 이 땅에 알 수 없는 갑작스런 희생과 억울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 다행히 지금 나에게는 빗겨간 사건들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나도 결코 밝혀낼 수 없는 억울함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 직면이 어떤 사람에게 다가서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지혜를 얻어야 함을 강력이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아픔을 어루만져 줄 그 누군가가 필요한 이 시대에, 실상 한국교회는, 아니 집단을 이룬 성도들의 생각은 착한 개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통회하는 마음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씁하기만 합니다. 팽목항을 찾고 안산 분향소를 찾았던 수많은 그리스도인은 그저 한 개인일 뿐 교회도 공동체도 되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 어떤 이슈 앞에서도, 먼저는 아픈 영혼을 품고, 위로하고, 붙잡아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이고 마음이여야 할진데 우리가 먼저 안보와 경제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이리 가르고 저리 가르는 안전모를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비록 나 개인은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한국교회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을 모른 것처럼 하면서 말입니다. 세월호 가족 여러분! 미안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수없이 묻혀 있는 또 다른 세월호 가족 여러분에게도 미안합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는 아픈 이들을 안아주기도 바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또 4월 그날이 다가오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일렁입니다. 그저 기도밖에 할 것이 없었다고 했던 부끄러움을 벗고 이 땅을 향해 수많은 연약한 이들을 찾아 길을 나섰던 주님처럼 길을 나서볼까 합니다. 경찰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의 갑작스런 순직의 소식, 6학년 어린 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큰 파도였습니다.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삶 속에서도 궁핍보다는 따스한 아버지의 손을 한번만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그 그리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따스한 손길을 대신 내밀어 준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손을 제가 내밀어 주고자 했습니다. 그랬더니 수많은 이들이 일어났습니다. 내 마음도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우리가 그리합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치 경제적 해석은 그것을 하려는 이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냥 안아주고 잡아주면서 상처를 먼저 만져주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그냥 돕는 길을 가십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셨듯 우리가 그렇게 가십시다. 그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