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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01 06:45
할아버지 할머니 선생님들.....
 글쓴이 : 정원영 …
조회 : 827  

‘이찬재’ 그림, ‘안경자’ 글의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출판:수오서재)에서 일부를 옮겨봅니다.
말을 못 하는 아기 아로는 자꾸 할아버지 손을 끌고 자기 방으로 가자한다. 할아버지가 북을 치면 아로는 춤추며 방을 돈다. 북 치는 할아버지도 춤추는 아로도 둘만의 흥에 빠져 있다. 시간이 흐르고 할아버지는 점점 시간을 잊어간다. 서너 살 때로 돌아간다. 아버지가 방문을 퉁퉁, 북 삼아 두들겨주면 그 장단에 춤을 추곤 했던 그때의 기억 속으로, 그때의 나이로, 두웅둥 둥둥 둥둥둥둥. 북소리 따라 할아버지가 옛날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로는 어느새 그 아버지의 아들, 지금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지난 어느 아침, “아로야, 어서 와라, 잘 잤니?” “…….” “왜, 어디 아파? 아로?” “…….” 아로는 할아버지 침대로 올라가더니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킨다. 뭐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아이고, 아프겠구나. 아로야, 할아버지가 호오-해주면 안 아파.” 할아버지의 호오 한 번에 아로는 금세 환히 웃으며 할아버지 손을 잡아끈다. 자기 방에 가서 돌자는 거겠지. 할아버지는 아로랑 아로 방에서 종일 놀고 있구나.

브라질 이민을 간 이민 1세대가 이민 3세대 손자 아로와 지내는 모습을 그린 글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너무나 재미있게 어우러져 놀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가 장난감이나 되는 듯 항상 할아버지를 찾고 또 할아버지를 통해 마음의 큰 위안도 받습니다. 할아버지여서 그럴까요? 친할아버지여서만 꼭 그런 걸까요? 아니지요, 놀아주지만 세세하게 살펴주며 놀아주기 때문이지요.

이런 모습에서 교회학교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유아 유치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교회학교에 어린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유아 유치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달리 방법이 없을까요? 사실 아이들이 교회를 가고 싶어 하면 부모들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예전에는 부모가 가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주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꿔져서 그런지 아이들이 주일 아침에 교회 가자고 조르면 아빠 엄마들이 따라 나설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교회를 나오면 자연스럽게 어른들도 부흥하게 됩니다. 유아 유치부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아주 젊은 그룹입니다. 교회 내 젊은 그룹이 없어서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유아 유치부가 없어서 젊은 부부 그룹이 없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교회 오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교회 오는 것을 즐겁게 만들면 젊은 부부들도 많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방법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평소에 못 가져본 장난감들이 많다든지 아니면 대형 물놀이 기구나 혹은 놀이기구가 있다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비용도 많이 들고 또한 넓은 공간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은퇴하신 어르신들이 위의 글에 나온 할아버지처럼 놀이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주일 하루일지라도 할아버지 선생님이나 할머니 선생님들이 주중에 전화도 해주고 또 주중에 집으로 한두 번 찾아가서 1-2시간 정도 놀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에 할아버지 만나러 가자며 아이들이 먼저 신발을 신고 나설 것입니다. 아이 부모들도 유아 돌봄이(베이비시터)가 왔기에 자기 시간을 좀 가질 수 있고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려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교회에서 함께 놀아주는 놀이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쌓을 수 있는 추억들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일에 교회에 나오게 될 것입니다. 유아 유치부 방도 조금 작은 방들로 구성을 해서 몇몇이 함께 놀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30분은 할아버지 할머니 놀이 선생님들과 놀고 30분은 할아버지 할머니 선생님 품에 안겨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교회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혹 떠나도 꼭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요? 여기에서 방법을 좀 더 넓혀 유아 유치부의 전도를 위해서는 교회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아동 독서 도우미 교육과 놀이 교육 등을 시켜 각 지역의 유치원에 파견하여 자원봉사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한주에 한두 시간 집을 방문하여 놀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일에도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을 몇 번이 아니라 몇 년을 꾸준히 하면 결과가 분명히 나올 것입니다. 유아 유치부 시절에 이렇게 해서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은 자라서 꼭 성도가 될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더라도 꼭 돌아오게 됩니다. 할아버지 선생님이 손가락 끝을 부여잡은 아이에게 호-오... 호-오……. 해주는 그런 교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아이들 뿐 아니라 은퇴하신 어른들께도 보람된 일이 될 것입니다.   

정채봉 작가의 에세이 ‘만남’에 보면 사람들과의 만남을 5가지 종류로 구분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선 같은 만남입니다. 처음엔 싱싱하지만 금방 상하고 비린내가 나는 생선처럼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면서 원한만을 남기는 만남입니다. 둘째는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곧 기억에서 지워지는 시간이 아까운 만남입니다. 셋째는 건전지 같은 만남입니다. 쓸모가 있을 때는 들고 있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멀어지는 수지 타산적인 만남입니다. 넷째는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화려하게 피지만 곧 지고 마는 끝이 안 좋은 만남입니다. 마지막으로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슬플 땐 눈물을 닦아주고 힘이 들 땐 땀을 닦아주는 서로 의지하는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만남을 이루며 지금까지 살아오셨습니까? 또한 이제부터 어떤 만남을 이루며 살아가시겠습니까? 손수건 같은 만남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은퇴하신 성도라면 이런 생각으로 어린 유아 유치부 어린이들과 손수건 같은 만남을 해보시는 것은 어떻겠는지요? 주님이 기뻐하실만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요즘은 핵가족 시대가 되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고 삼촌 고모 누나 형도 있는 그리고 그들 모두가 장난감이 되어주는 교회가 된다면 어린아이들의 영혼 안에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분명하고도 섬세하게 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는 말씀이 왠지 모르게 마음속 깊이 다가오는 밤입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