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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20 11:04
당신이 문밖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쓴이 : 정원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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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훙’ 역음, ‘임병진’ 옮김의 『어머니의 편지』(출판:넥서스북스)에서 일부를 옮겨봅니다.

당신이 문밖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 찾기 위해서? 물건을 팔기 위해서? 직업을 찾기 위해서? 낯설고 두렵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당신은 문밖에서 망설인다. 문을 두드린다 해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당신은 두려움에 안절부절못한다. 당신은 이내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를 상상해 본다. 하나, 문전박대를 당해 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전혀 없다. 둘, 들어가자마자 냉정하게 거절당해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다. 셋, 미소 작전을 써서 집 안으로 진입하긴 했으나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뛰쳐나온다. 넷, 문안에 들어가 기분 좋은 일과 대면한다. 성공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한 희망적인 느낌, 인생의 해법을 찾는다. 애정도, 사업도.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당신, 주위를 배회하면서 성공을 잡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실패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당신은 거절당할까 봐 두렵다. 문안에 들어선 후에도 성과가 없을까 봐 두렵고, 또 다른 위기와 곤경에 처할까봐 두렵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문을 두드리려는 최소한의 노력 자체를 포기하고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을 시간의 강물 속에 던져 인생을 허비하고 만다.

어떤 사람은 문을 두드려 열었으나 실패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실패를 다시 재도전의 기회로 삼아 용기를 낸다. 그는 다시 문밖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아하, 내가 또 원래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는군.” 또 어떤 사람은 주저 없이 문을 두드리고 활짝 열어젖힌다. 그는 다행히도 재능과 인간적 매력을 지녀 도전하는 일마다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문을 두드리는 ‘용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문을 여는 순간에 성공인지 실패인지 단정 지을 수 없다. 문이 견고하게 닫혀 있을 때 당신이 해야 할 첫 번째는 ‘용기’를 내는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용기는 꼭 필요합니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성취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여러 역사적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차치하고 미국을 태동케 했던 청교도들의 용기는 새로움에 도전하는 용기를 설명할 때 종종 말하여집니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영국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일은 미지에의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용기를 내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로 출발했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문을 열고 뛰어들었기에 오늘의 미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각각 발견합니다. 그리고 맡겨진 사명을 위해 삶과 신앙의 자리에서 응답하며 살아갑니다. 구원의 감격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런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응답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주일만 성도인 이들도 많습니다. 물론 여러 정황과 상황이 주일 혹은 교회 공동체에 더 집중하지 못할 만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주일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는 성수주일에 관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성수주일을 하면 신앙의 자리를 잘 지켜낼 수 있는 기초를 든든히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 글에서는 교회의 여러 일에 적극 참석하고 주일을 온전히 드리는 것만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름 아닌 우리의 삶의 자리자리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내 뿜는 삶과 신앙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온 족속을 제자를 삼고 땅 끝까지 이르는 증인 된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교회 안에 국한되거나 혹은 믿음의 형제자매만으로 한정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한 주간 동안 삶의 자리를 갖게 되는 직장 혹은 이웃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응답하는 삶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기 싫은 일들, 양보해야 하는 일들, 때론 외면받고 소외받을지라도 그리스도인 다운 정직과 성실로 그리고 섬김과 나눔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감당하려다 보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들이 내게 발생할지 모르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오히려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고 맙니다. 마치 직장과 사업장에서 혹은 이웃들, 친구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해보지도 않고 혹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스스로 두려워하며 문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그냥 좀 가만히 있고 싶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알아요.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 때문에 정작 몇 걸음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뛰쳐나왔던 것은 아닐까요? 다시 용기를 냅시다. 힘을 내봅시다. 주를 더 의지해 봅시다.

신앙의 위인들도 모두 이런 용기를 냈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미지의 세계,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으로 갔습니다. 이 용기를 내자 그의 자손이 별과 같이 모래와 같이 많아졌습니다. 온 족속을 위한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주님을 전혀 모르는 바로 앞에 서는 용기를 내자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또한 용기를 내서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용기로 말미암아 가나안이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핍박자요 훼방자였던 그가 주님을 만나고 제자의 길에 용기를 내어 뛰어들자 복음이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용기를 가진 이들, 비록 중간중간 넘어짐도 있고 실패와 낙담도 있었지만 용기를 냈던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며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응답은 교회와 주일에만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용기를 내세요.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 봅시다. 주께서 그런 여러분의 용기를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 끝 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